첩첩산중의 시작

작곡가 김재훈은 최근 몇 년간 국내의 여러 명산을 등산하며 움직이지 않는 산이 주는 확고함과 생명력, 산마다 가지고 있는 수많은

역사와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주로 소규모 편성의 앙상블을 통해 자연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환원해온 그는 2016년, 아티스트들과

산속에 모여 자연에서 받은 영감으로 함께 작품을 만드는 릴레이 다원예술 프로젝트‘첩첩산중’을 시작한다.

 

프로젝트의 첫 시작은 ‘민족의 영산’이라고 불리는 한반도의 명산 지리산이었다. ‘어머니 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넓은 지역을 품고 있는 깊은 산이기에 그만큼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는 지리산에서 김재훈은 이 산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상징하는 춤과 음악이 결합된 댄스필름을 제작하는 첩첩산중의 첫 번째 프로젝트 첩첩산중×지리산을 시작한다. 김재훈은 지리산의 창세신화인 마고 신화를 주목하고 인간의 등산 행위의 본질적 이유를 신화에 대입하여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인 댄스필름 <마고>를 제작했다.

마고 신화

창세신이자 지리산의 여신인 천왕봉의 마고는‘선도성모’ 또는 ‘노고’라고도 불린다. 마고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도사 반야를 만나 천왕봉에 살며 여덟 명의 딸을 낳았다. 어느 날, 반야는 더 많은 깨우침을 얻기 위해 가족들을 두고 지리산을 떠난다. 마고는 딸들을 땅으로 내려 보내고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에게 줄 옷을 지으며 그를 기다렸지만, 반야는 마고가 백발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후세 사람들은 천왕봉에 마고할미 상을 모시고,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을 붙인 노고단에서 그녀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는 반야봉이라 불렀다. 땅으로 내려보낸 여덟 딸들은 조선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

댄스 필름 ?마고?

사람들은 어차피 내려갈 산을 왜 올라갈까? 프로젝트 첩첩산중은 지리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마고 신화를 재해석하여 그 답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문명이 그 기억을 지웠지만, 우리가 원래 있었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함을 몸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몸이 우리를 산으로

이끄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산을 떠났던‘반야’였던 것이 아닐까.



프로젝트는 2016년 9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총 다섯 번의 지리산 답사와 촬영으로 이루어졌으며 긴 등산과 추위 속의 고된 여정을 필요로 했다. 그렇게 제작된 댄스필름? 마고? 와 지리산의 풍경과 프로젝트의 여정을 기록한 포토그래퍼 채드박의 사진은 아르코미술관 스페이스 필룩스에서 2017년 2월 24일부터 3월 5일까지 상영, 전시되었다. 이후 ?마고?는 ? 스페인 플랫랜즈 댄스필름 페스티벌(Flatlands Dance Film Festival)?과 ?멕시코시티 비디오댄스 페스티벌(Mexico City Videodance Festival)?의 공식 상영작으로 선정되었다.